
베란다 화분 하나로 시작한 텃밭
채소를 그렇게 안 먹던 아이한테 뭔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베란다에 작은 화분 몇 개를 놓고 상추와 방울토마토를 심어보기로 했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냥 심심풀이 정도로 시작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편식 대처법을 이미 몇 가지 시도해본 뒤였던 터라, 이번엔 그냥 새로운 자극 삼아 가볍게 시작한 셈이었다.
씨앗부터 같이 심었다
모종을 사다 심어도 됐지만, 일부러 씨앗부터 심었다. 아이 손으로 흙을 파고 씨앗을 넣고 흙을 덮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했다. 며칠째 아무 변화가 없어서 "이거 안 되는 거 아니야?"라고 몇 번이나 물었는데, 그때마다 "기다려보자"라고만 답해줬다. 결과가 바로 보이는 것에 익숙한 아이한테는 이 기다림 자체가 낯선 경험이었던 것 같다.
새싹이 올라온 날의 반응
일주일쯤 지나 흙을 뚫고 작은 새싹이 올라온 날, 아이 반응이 예상보다 컸다.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베란다부터 확인하러 갔다. 자기가 심은 씨앗에서 진짜 뭔가가 자라난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매일 물 주는 게 스스로 하는 일이 됐다
물 주는 역할은 아이한테 온전히 맡겼다. 처음엔 매일 챙기라고 옆에서 상기시켜줘야 했는데, 며칠 지나자 알아서 아침마다 물뿌리개를 들고 나갔다. 자기가 책임지는 일이 생겼다는 감각이 아이한테는 꽤 뿌듯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화분 받침이 넘치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 시행착오조차 스스로 겪으며 조절하는 법을 배워가는 눈치였다.
직접 기른 걸 먹어보라고 했다
상추가 어느 정도 자라자, 그걸 따서 그날 저녁 식탁에 올렸다. 평소 같으면 쳐다도 안 봤을 상추인데, "내가 기른 거"라는 이유만으로 순순히 집어 먹었다. 방울토마토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기르고 수확하는 과정을 거친 채소는 그냥 사 온 채소와는 아이한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첫 수확한 상추 몇 장을 접시에 올려두고 사진까지 찍어달라고 할 정도로 스스로 뿌듯해했다.
지금 드는 생각
편식을 고치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부분에서도 도움이 됐다. 그보다 더 크게 남은 건, 아이가 뭔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는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씨앗에서 새싹으로, 새싹에서 먹을 수 있는 채소로 자라나는 전 과정을 지켜본 경험은, 짧은 시간 안에 쉽게 만들어줄 수 없는 종류의 배움이었다.
지금은 화분 두 개를 더 늘려서 상추, 방울토마토 말고도 다른 채소도 심어보고 있다. 매번 뭘 심을지 아이한테 고르게 하는데, 이번엔 오이를 심어보고 싶다고 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몰라도,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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