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숟갈 먹고 숟가락 내려놓는 아이
밥때마다 몇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배불러"라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반찬을 바꿔봐도, 좋아하는 캐릭터 그릇에 담아봐도 그때뿐이었다. 밥 한 끼 먹이는 게 매번 협상하듯 힘들었다.
이것저것 다 해봤다
메뉴를 다양하게 바꿔봤다. 좋아하는 반찬만 골라 차려도 보고, 새로운 레시피도 시도해봤다. 밥그릇을 캐릭터 그릇으로 바꿔도 보고, 숟가락도 재밌게 생긴 걸로 사줘봤다. 식사 시간을 놀이처럼 만들어보기도 했다. "이 숟갈은 비행기야, 입으로 들어간다"처럼 놀이를 곁들여도 그날만 반짝 효과가 있었다.
밥 먹는 장소를 바꿔보기도 했다. 거실 매트에서 소풍 느낌으로 먹여도 보고, 텐트를 쳐놓고 그 안에서 먹여도 봤다. 다 그때그때는 반응이 좋았지만, 며칠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하루 일과를 쭉 되짚어봤다. 아침 먹고 나서 오전 간식, 점심 먹고 나서 오후 간식, 저녁 먹기 전에도 배고프다고 하면 또 뭔가를 줬다. 계산해보니 하루에 간식이 서너 번은 들어가고 있었다. 양은 적었지만 그게 쌓이니 정작 끼니때는 배가 안 고팠던 거다. 과자 몇 개, 우유 한 잔, 과일 몇 조각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 더해보니 어른 기준으로도 적지 않은 양이었다.
원인이 반찬이나 분위기가 아니라 간식 자체였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방법을 아무리 바꿔도 안 됐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메뉴를 열 번 바꾸는 것보다 간식 습관 하나를 손보는 게 먼저였던 셈이다.
하물며 우리는 아이가 어렸을 때 스스로 조절해서 간식을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며 아이 손이 닿는 적당한 높이의 싱크대 한 쪽에 아이 전용 간식 창고를 만들어 주었었다. 항상 풍요롭지는 않은 구성이었지만 그 안에서 우리 딸은 나름의 규칙으로 배고플 때 먹을 것들을 계산해서 먹고 있었던 것이다.
간식부터 확 줄였다
그래서 간식 횟수를 하루 한 번으로 정했다. 그것도 끼니와 최소 두 시간 이상 간격을 두고 줬다. 양도 배가 부를 정도가 아니라 살짝 입가심하는 수준으로 줄였다. 처음 며칠은 간식 달라고 조르는 통에 곤욕을 치렀다. "배고프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조금만 기다리면 밥 먹을 시간이야"라고만 하고 버텼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쳐다보는 눈빛을 못 본 척하는 것도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계기였는데, 어느날 장보는 타이밍도 늦고 딱 맞게 집에 밥이며 반찬이 다 떨어져서 애타게 배달 기사님을 기다리던 날이 있었다. 배가 너무 고픈데 먹을 밥이 없었고, 평소엔 잘 먹지도 않던 과일이며 과자 부스러기나 빵한조각도 없던 그런 날이었다. 배고프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갑자기 냉장고 안에서 파프리카 두개를 꺼내 오더니 이거라도 먹게 잘라 달라는 것이었다. 장난인가 싶어 반신반의 하면서 스틱 형태로 잘라 주었는데 노래를 흥얼 거리며 너무나도 맛있게 파프리카를 먹는 것이었다.
일주일 만에 달라진 밥상
일주일쯤 지나자 눈에 띄게 달라졌다.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정말 배가 고픈 상태로 식탁에 앉으니, 반찬을 특별히 바꾸지 않아도 알아서 잘 먹었다. 그동안 시도했던 캐릭터 그릇이나 놀이식 식사보다, 간식 하나 줄인 게 훨씬 확실한 해결책이었다.
돌아보면 밥을 안 먹는 이유를 식사 자체에서만 찾으려 했던 게 문제였다. 하루 전체를 놓고 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었다. 비슷한 고민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반찬이나 분위기를 바꾸기 전에 하루 동안 간식이 얼마나 들어가고 있는지부터 한번 체크해보시길 권하고 싶다.
한 가지 더 느낀 건, 간식을 줄인다고 해서 아이가 배고파서 힘들어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배고픔과 배부름의 감각을 스스로 더 정확하게 느끼게 된 것 같았다. 예전엔 늘 뭔가 먹은 상태라 배고픔 자체를 잘 못 느꼈다면, 지금은 밥때가 되면 스스로 "배고파"라고 먼저 말하는 날이 늘었다.
언제나 맞는 말은 아니지만 배고픔도 하나의 결핍이라면, 결핍도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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