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한 마리에 온 놀이터가 멈췄던 날
놀이터 바닥에 개미 몇 마리가 지나가는 걸 본 순간, 아이가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됐다. 소리도 못 지르고 그냥 얼어붙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를 쳐다봤다. 안아 올려서 다른 곳으로 옮겨줘야 겨우 진정됐다. 그날 이후로 바깥 놀이 자체를 꺼리기 시작했다. 놀이터 얘기만 꺼내도 "거기 벌레 있잖아"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 일이 있기에 어떠한 징후나 경험은 없었다. 벌레에 물려 본 적도 없었고, 혐오감을 가질만한 경험도 없었기에 나도 놀랐던 기억이다.
무섭다는 말 뒤에 숨은 것
처음엔 "벌레는 안 물어, 괜찮아"라고 설명해줬다. 그런데 이 말은 전혀 안 통했다. 아이가 무서워하는 건 물릴까 봐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이 움직이는 그 모습 자체였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빠르게 방향을 트는 움직임이 아이한테는 통제 불가능한 위협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어릴 때 비슷한 이유로 나방을 무서워했던 기억이 났다. 물지도 않는 나방인데도, 어디로 날아갈지 예측이 안 되니까 그게 더 무서웠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나방은 무섭다. 물론 충분히 때려 잡을 수 있는 피지컬을 갖고 있는데도 나방이 무서운 이유는 예측 불가능한 비행방식과 날개 소리 때문이다.
멀리서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직접 만지거나 가까이 다가가라고 하지 않고, 안전한 거리에서 지켜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유리병에 개미를 몇 마리 넣고 뚜껑을 닫은 채로 같이 관찰했다. 유리 너머로 보니 아이도 한결 편하게 들여다봤다. "쟤네 지금 뭐 하는 걸까?"라고 물으며 관찰 자체를 놀이처럼 만들었다. 개미가 먹이를 옮기는 모습을 보면서 "저건 자기 집으로 밥 나르는 중인가 봐"라고 이야기를 만들어주니, 무서운 대상이 아니라 관찰할 만한 대상으로 서서히 바뀌어갔다.
며칠 지나자 유리병 없이도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개미가 지나가는 걸 구경하는 정도는 가능해졌다. 여전히 가까이 다가가진 않았지만, 예전처럼 그 자리에서 얼어붙지는 않았다. 절대로 아이앞에서 개미를 밟아 죽이거나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 주었다. 더 나아가서는 개미의 움직임을 '우리'와 연결하지 않고 개미의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했었다. "어? 저 개미는 조금 빠르게 움직이는게 뭔가 잃어버렸나봐?" 또는 "후다닥 달려가는 모습이 소변이 마려운가봐?" 하는 방식이다.
책과 영상으로 미리 익숙해지게 했다
동시에 곤충이 나오는 그림책을 자주 보여줬다. 실제로 마주치기 전에 익숙한 이미지로 먼저 접하게 하는 거다. 곤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왜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지 같은 정보를 알고 나니, 예측 불가능하다고 느꼈던 움직임이 조금은 이해 가능한 것으로 바뀐 듯했다. 도서관에서 곤충 그림책을 몇 권 빌려다 두니, 처음엔 표지도 안 보려 하다가 나중엔 스스로 펼쳐보는 모습도 보였다.

곤충 박사가 되다
이제는 개미나 작은 벌레는 눈앞에서 봐도 소리를 지르거나 얼어붙지 않는다. 개미 정도는 "개미다!" 정도로 담담하게 넘어간다. 아마도 무섭다는 감정 자체를 없애려 하기보다, 그 대상을 조금씩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접근이 훨씬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다짜고짜 괜찮다고 말하기보다, 왜 무서운지부터 이해하려 했던 게 결국 더 빠른 길이었다.
돌아보면 "괜찮아, 안 물어"라는 말은 어른의 논리였을 뿐, 아이가 실제로 느끼는 두려움의 이유와는 전혀 다른 지점을 짚고 있었다. 아이가 유독 무서워하는 게 있다면, 그게 정말 무엇 때문인지 한 번 더 물어보는 것부터가 시작인 것 같다.
얼마전에는 한참을 바닥에서 뭔가를 하고 있어 가까이 가보니, 바닥에 지렁이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전날 비가온 탓에 보도 블럭에 나왔다 갈길을 잃은 지렁이였다. 나뭇잎으로 지렁이를 들어서 흙에 놔줘야 살 수 있다고 하면서 잘 되지 않자, 금방이라도 손으로 만져서 들어 옮길 것처럼 보여서 내가 말려야 할 정도였다. "지렁이는 피부가 얇아서 사람 손의 온도는 뜨거울 수 있어! 그래서 나뭇잎으로 들어서 흙으로 옮겨줘야 해! 그래야 살 수 있어". 개미만 봐도 얼어붙었던 아이가 지금은 지렁이부터 올챙이 개구리 손으로 못만지는 게 없어서 그러지 말라고 부탁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사마귀나 벌 처럼 공격성을 가진 곤충, 별레는 아직 무서워 한다. 근데 저런 곤충들은 성인이 된 나도 아직 무섭기 때문에 굳이 뭘 더 말해 주진 않는다. 말벌 생김새를 봐라. 초첨없는 삼각형 눈과 요란한 날개짓 소리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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