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로

승부욕 강한 아이

발라판 2026. 8. 28.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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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지면 판을 엎어버리던 아이, 지금은 달라졌다

가족끼리 보드게임을 할 때마다 아이가 지는 순간이 오면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처음엔 시무룩해지는 정도였는데, 나중엔 아예 판을 손으로 확 밀어버리거나 카드를 던지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게임 한 판 하려고 시작했다가 결국 다들 눈치만 보고 끝나는 날이 반복됐다. 재밌자고 시작한 시간이 매번 이런 식으로 끝나니, 차라리 같이 게임을 안 하는 게 낫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봐주기로 넘어가려 했던 시기

한동안은 아이가 이기도록 은근슬쩍 봐주면서 넘어갔다. 그러면 당장은 웃으면서 끝나니 편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맞나 싶었다. 봐주는 걸 눈치채기 시작하면 그마저도 안 통할 거고, 무엇보다 이기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나중에 진짜 지는 상황을 더 못 견디게 될 것 같았다. 유치원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 말로는 친구들과 게임할 때 지면 화를 참지 못해 몇 번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집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먼저 다룬 것

그래서 게임 규칙보다 먼저 "질 때 느끼는 기분"부터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게임 시작 전에 "오늘도 누군가는 지겠지, 지면 속상한 게 당연해. 그런데 속상해도 판을 엎지는 않기로 하자"라고 미리 약속을 정했다. 화가 나는 감정 자체는 인정해주되, 그걸 표현하는 방식에만 선을 그은 거다.

그리고 나부터 일부러 자주 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졌을 때 "아 졌다, 아쉽다. 다음 판엔 이겨봐야지"라고 과장되게 말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보여줬다. 어른도 지면 아쉬워한다는 걸, 그런데도 판을 엎지는 않는다는 걸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내가 하는 그 말투를 며칠 뒤 자기가 졌을 때 비슷하게 따라 했다. "아 졌다, 아쉽다"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말투 하나가 이렇게 빨리 옮아가는구나 싶어서 놀랐다.

처음엔 잘 안 됐다

물론 처음 몇 번은 여전히 화를 냈다. 그래도 판을 엎는 대신 "아 짜증나"라고 말로 표현하는 정도로 줄어든 걸 보고, 방향이 아예 틀린 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화를 완전히 안 내게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라, 화를 표현하는 방식을 조금씩 바꿔가는 게 목표라는 걸 이때 다시 새겼다.

지금은 이렇게 달라졌다

요즘은 져도 "아 아깝다"라고 말하고 넘어가는 날이 늘었다. 가끔 정말 속상한 날은 잠깐 시무룩해하다가도, 스스로 "다음엔 이길 거야"라며 다시 판에 앉는다. 결과보다 그 순간의 감정을 먼저 인정해주고, 표현하는 방법을 어른이 직접 보여주는 게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는 걸 보드게임 판에서 배웠다.

돌아보면 처음엔 "질 줄도 알아야지"라고 결과를 가르치려 했던 게 오히려 방향이 안 맞았던 것 같다. 아이한테 필요했던 건 지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속상한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그 둘은 비슷해 보여도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게임의 룰과 방법에 익숙해진 우리 딸은 어쩔때는 나를 봐주면서 할때도 생겼다.
여유있는 얼굴과 표정과 몸동작으로 '많이 늘었네?' 라며 나에게 말하곤 한다.

조금 더 자라면 어른들의 게임과 냉혹한 승부의 세계를 다시 일깨워 줄 날이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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