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르트르가 서 있던 자리 — 신이 없는 자리에서 인간을 묻다
사르트르는 20세기 프랑스 사람으로,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다. 앞서 다룬 철학자들이 대부분 먼 과거의 사람이었다면, 사르트르는 불과 백여 년 전, 상대적으로 최근 사람이다.
그가 서 있던 자리를 이해하려면 니체를 떠올려야 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절대적인 기준이 사라진 자리를 가리켰다. 사르트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신이 없다면,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의미나 목적도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로 이 질문이 그의 철학 전체를 관통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정해진 사용법은 없다
사르트르를 대표하는 말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다. 말은 어려워 보이지만 뜻은 의외로 분명하다. 가위를 예로 들어보자. 가위는 '종이를 자르는 도구'라는 쓰임새가 먼저 정해진 뒤에 만들어진다.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무엇을 할 물건인지 정해져 있는 상태다. 이런 사물은 본질이 존재보다 먼저다.
그런데 사르트르는 인간은 정반대라고 말한다. 인간은 일단 세상에 던져져 존재하고, 그다음에야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목적이나 본질 같은 건 없다. 가위가 쓰임새를 먼저 갖고 태어난다면, 인간은 아무 정해지지 않은 채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만들어간다는 뜻이다.
자유와 책임 — 인간은 자유형에 처해있다
정해진 본질이 없다는 건, 인간이 완전히 자유롭다는 뜻이다. 누구도 나 대신 내 삶의 의미를 정해주지 않으니, 모든 선택은 온전히 내가 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르트르는 이 자유를 가볍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인간은 자유형에 처해있다"고 표현했다.
왜 하필 '형벌'일까. 자유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내 선택을 대신 책임져줄 신도, 운명도, 정해진 규칙도 없다면, 모든 결과는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한다. 남 탓을 할 수도, 상황 탓을 할 수도 없다. 이 완전한 책임의 무게가, 자유를 해방이 아니라 형벌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여기서 사르트르는 한 걸음 더 나간다. 내가 하는 선택은 나 혼자만의 게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에 대한 한 표본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만큼 선택은 무겁고, 그 무게를 지는 게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자기기만 — 할 수 없다는 핑계로 도망치기
완전한 자유와 책임은 무겁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그 무게에서 도망치려 한다. 사르트르는 이걸 '자기기만'이라 불렀다. 자신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마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척 스스로를 속이는 태도다.
예를 들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 도리 방법이 없어" 같은 말이다. 물론 현실적인 제약은 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그런 상황에서도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여전히 내 선택이라고 보았다. 방법이 없었다는 말로 선택의 책임을 상황에 떠넘기는 게 바로 자기기만이다.
이 개념이 날카로운 건, 일상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주 이런 핑계를 대는지 들여다보면 드러난다. 시간이 없어서,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이런 말로 우리는 선택의 책임을 밖으로 돌린다. 사르트르는 그 순간에도 선택은 여전히 나의 것이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라고 권한다.
사르트르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
사르트르를 앞선 철학자들과 나란히 놓으면 흥미로운 연결이 보인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기준이 사라진 자리를 가리켰다면, 사르트르는 그 자리에서 "그렇다면 인간은 스스로를 만들어가면 된다"고 답했다. 니체가 던진 질문을 사르트르가 이어받은 것이다.
사르트르가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내가 지금 삶을 도리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종종 환경이나 상황을 핑계로 삼아 지금의 모습을 정당화한다. 사르트르는 말한다. 그것도 결국 네 선택이었다고.
물론 이 사상은 무겁게 다가올 수 있다. 모든 게 내 책임이라면, 어떤 사람에게는 그 무게가 오히려 가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사르트르의 진짜 의도는 자책감을 주려는 게 아니라, 내 삶이 내 선택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서 오는 힘을 깨닫게 하려는 데 있다. 정해진 운명이 없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내가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