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셋이서 안전요리 하기
플라스틱 칼 하나로 시작된 셋이서 요리하기
요리할 때마다 아이는 늘 주방 밖에서 구경만 했다. 칼이나 불 근처는 위험하니 당연히 못 오게 했는데, 그럴 때마다 문 앞에서 서성이며 뭐라도 거들고 싶어 하는 눈치가 보였다. 그러다 아이용 플라스틱 칼을 하나 사서, 처음으로 셋이 같이 요리를 해보기로 했다. 마트에서 그 칼을 고를 때부터 아이 표정이 벌써 들떠 있었다.
위험하지 않은 재료부터 맡겼다
플라스틱 칼로도 자를 수 있는 재료 위주로 골랐다. 삶은 계란, 부드러운 바나나, 두부처럼 힘을 많이 안 줘도 잘리는 것들이었다. 아이한테는 도마와 플라스틱 칼을 따로 내주고, 그 재료들을 써는 역할을 맡겼다. 손을 다칠 걱정이 없으니 나도 옆에서 편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서툴러도 끝까지 시켰다
처음엔 두부가 뭉개지고 계란도 삐뚤빼뚤 잘렸다. 예전 같으면 답답해서 손이 먼저 나갔을 텐데, 이번엔 끝까지 아이 손에 맡겨뒀다. 모양이 좀 이상해도 "이것도 네가 만든 거니까 특별하다"고 말해주니, 아이도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뿌듯함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옆에서 지켜보며 몇 번이나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참고 지켜보기만 했다.
역할을 나누니 훨씬 수월했다
와이프는 불 앞에서 메인 요리를 하고, 나는 아이 옆에서 재료 손질을 도왔다. 셋이 각자 역할이 있으니 누구 하나 그냥 구경만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도 "나는 계란 담당"이라며 스스로 역할을 정하고 그 일에 집중했다. 예전에는 주방이 어른들만의 공간이었는데, 이번엔 온 가족이 함께 쓰는 공간이 된 느낌이었다. 서로 손이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대화가 끊이지 않아서, 평소 저녁 준비 시간보다 훨씬 시끌벅적하고 즐거웠다.
완성된 한 끼, 반응이 달랐다
아이가 손질한 재료로 완성된 요리를 먹을 때, 평소보다 훨씬 잘 먹었다. 편식하던 채소도 "내가 자른 거니까"라며 순순히 집어 먹었다. 본인이 참여한 음식이라는 것만으로도 먹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는 걸 보고, 요리 참여가 편식 문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드는 생각
거창한 요리가 아니어도, 안전한 도구 하나만 있으면 아이도 충분히 주방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위험을 이유로 무조건 못 오게 하기보다, 아이 수준에 맞는 역할을 찾아주는 게 먼저였던 것 같다. 이제는 요리할 때마다 아이가 먼저 "나 뭐 도와줄까?"라고 물어본다. 주방이 셋 모두의 공간이 된 지금이, 이전보다 훨씬 즐겁다.
돌이켜보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주방에서 아예 배제했던 게, 아이 입장에서는 그냥 소외감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 싶다. 완전히 열어주는 것과 완전히 막는 것 사이에,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중간 지점이 있었는데 그동안 못 찾고 있었던 셈이다. 다음번엔 또 어떤 역할을 맡겨볼 수 있을지 벌써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