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 시험 스트레스

받아쓰기 점수 나온 날
학교 다녀오면 늘 먼저 가방을 열어 보여주던 아이가, 그날은 유독 가방을 꼭 붙잡고 안 열었다. 알고 보니 받아쓰기 시험지에 틀린 게 몇 개 있었다. "몇 개나 틀렸어?"라고 물으려다가, 아이 표정을 보고 그 질문부터 참았다. 평소와 다르게 눈도 잘 못 마주치는 모습에, 뭔가 단단히 마음이 상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점수보다 반응이 문제였다
돌이켜보니 그전까지는 시험지를 보자마자 "이건 왜 틀렸어?"부터 물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한테 시험지는 혼나는 계기로 자리 잡아버린 것 같았다. 틀린 개수를 확인하는 것보다, 그 순간 아이가 느꼈을 부끄러움이나 속상함을 먼저 다뤄줬어야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학창 시절 시험지를 받으면 틀린 문제부터 눈에 들어와서 마음이 철렁했던 기억이 있는데, 정작 아이한테는 그 감정을 헤아려주지 못했다.
나는 사실 받아쓰기 시험을 보면 항상 많이 틀렸었다. 받침이 두개 들어가는 단어는 물론이고 띄어쓰기 부터 제대로 잘 쓰지도 못했다. 그때는 내가 왜 이런지,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저렇게 다들 잘 하는지 미스테리였다. 당시만 해도 선행 학습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기였고 미리 배움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도 없었으니까.
틀린 것보다 맞은 것부터 봤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시험지를 받으면 틀린 문제 대신 맞은 문제를 먼저 짚어줬다. "이거 어려운 건데 맞았네"라고 말해주면, 아이도 조금씩 시험지를 스스로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틀린 부분은 그날 바로 다루지 않고, 하루 정도 지난 뒤 편안한 분위기에서 같이 다시 써보는 정도로만 접근했다. 그날 바로 다루지 않는 이 하루의 간격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했다. 감정이 가라앉고 나서 접근하니 아이도 훨씬 방어적이지 않게 받아들였다.
매일 조금씩, 시험처럼 안 느끼게
시험 전날 몰아서 연습하던 방식도 바꿨다. 매일 저녁 5분 정도만 그날 배운 단어 두세 개를 써보는 걸로 습관을 만들었다. "오늘의 시험"이 아니라 "오늘의 연습"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짧고 부담 없는 반복이 쌓이니, 정작 실제 시험 날에는 크게 긴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전날 밤 벼락치기로 몰아서 외우던 예전 방식이 오히려 시험 자체를 부담스러운 이벤트로 만들었다는 걸 이때 깨달았다.
아이에게 이건 하나의 게임, 하나의 놀이라고 느끼도록 해주고 싶었다. 우리들 게임 할 때보면 스테이지 클리어를 못 했다고 그 게임이 영원히 끝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하다 보면 어느새 내 캐릭터는 레벌업을 거듭하면서 아주 많이 성장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임이 잘 안된다고 실망하거나 슬퍼하지 않지 않을까.
소리 내어 읽는 연습을 더했다
틀리는 단어들을 보니 발음과 표기가 다른 경우에서 유독 헷갈려 했다. 그래서 쓰기 전에 먼저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어보게 했다. 글자와 소리를 같이 연결하는 연습을 하니, 헷갈리던 부분에서 실수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엄마 아빠도 그랬다고 공감해 주었다. 배운적이 없기 때문에 잘 하지 못하는건 당연한 거라고 계속 이야기 해 주었다.
몇 주 뒤 달라진 반응
그 이후로는 스스로 먼저 꺼내 보여줬다. 틀린 게 있어도 예전처럼 숨기려 하지 않고 "이거 헷갈렸어"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점수 자체보다, 시험지를 받아드는 그 순간의 감정을 어떻게 다뤄주느냐가 훨씬 중요했다는 걸 이번에 새삼 느꼈다.
가방을 안 열려던 그날을 계기로 여러 가지를 바꿔봤지만,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아이의 태도보다 내 반응이었던 것 같다. 틀린 걸 지적하기 전에 맞은 걸 먼저 봐주는 습관 하나가, 시험을 대하는 아이의 마음가짐 자체를 바꿔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