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치는 아이
기타 배운 지 한 달, "손가락 아파서 그만할래"
기타를 배우겠다고 먼저 조른 건 아이였다. 영화 트롤에서 트롤들이 드럼치고 기타 치는 걸 보고 와서는 며칠 내내 사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작은 사이즈 기타를 사주고 학원도 등록했는데, 한 달쯤 지나자 갑자기 "손가락 아파서 그만할래"라고 했다. 처음 등록할 때만 해도 매일 신나서 기타를 만지작거리던 걸 생각하면 꽤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기타는 사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악기였다. 통기타 하나 들고 노래 흥얼거리면서 맥주한잔 하면 이 얼마나 낭만있는가 말이다. 시간이 없어서, 바빠서, 레슨비가 아까워서 여러가지 핑계들로 나는 결국 배우지 못했지만 딸아이는 평생 기타를 쳤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강했다.
손끝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처음엔 그냥 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손끝을 살펴보니 코드 잡는 자리마다 빨갛게 자국이 나 있었다. 기타 줄을 누르다 보면 손끝에 굳은살이 생기기 전까지 꽤 아프다는 걸, 그제야 검색해보고 알았다. 아이 입장에서는 진짜 아픈 걸 참고 하다가 한계에 다다른 거였다. 어른들이야 "그 정도는 참아야지"라고 쉽게 말하지만, 매일 손끝이 따끔거리는 걸 참으면서까지 연습하라는 건 생각보다 큰 요구였다. 손가락이 아프니 자꾸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자연스럽게 흥미를 잃어 가는것 같아 보였다.
억지로 붙잡지 않기로 했다
그 사실을 안 뒤로는 "그래도 시작한 거니까 조금만 더 해보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 아픈 건 진짜 힘든 일이야, 오늘은 좀 쉬자"라고 먼저 말해줬다. 그리고 학원 선생님한테도 상황을 얘기해서, 당분간 코드 연습 대신 리듬이나 소리 듣기 위주로 수업 방식을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선생님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며, 손끝 통증 때문에 그만두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알려주셨다. 처음 배우는 단계에서는 통증 관리가 실력보다 먼저라는 조언도 함께 들었다.
부담을 줄이니 다시 손이 갔다
며칠 쉬고 나서, 기타를 억지로 권하지 않았는데도 아이가 먼저 방에서 기타를 꺼내 튕겨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도 "코드 잡아봐"라고 하지 않고 그냥 소리 내는 걸 지켜만 봤다. 신기하게도 부담을 걷어내니 오히려 스스로 다시 가까이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처음엔 그냥 줄을 대충 튕기며 소리만 내다가, 며칠 지나자 스스로 코드 표를 다시 꺼내 보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 걸 보면서, 진짜 하고 싶었던 마음까지 없어진 건 아니었구나 싶어 안도했다.

지금은 이렇게 하고 있다
요즘은 손끝이 아플 때는 스스로 "오늘은 살살 칠래"라고 말하고, 괜찮은 날은 알아서 코드 연습을 조금 더 한다. 자기 컨디션에 맞춰 강도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붙잡고 하라고 시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악기 하나 배우는 데도 몸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아이 손끝을 보고 나서야 제대로 알았다.
돌아보면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그 말 자체보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먼저 살펴본 게 다행이었다. 만약 "약속했으니까 계속해야지"라며 그 자리에서 밀어붙였다면, 아마 기타 자체에 대한 거부감만 남았을 것 같다. 아이가 뭔가를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 의지의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부터 구분해보는 게 먼저라는 걸 이번에 새삼 느꼈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그걸 같이 기다려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낮은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뒤돌아 보았을 때 아주 높은 곳에 올라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어렸을 때 부터 알아 채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