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할 때

"저기 애들이랑 왜 안 놀아?" 묻기 전에 알아챈 것
새로 이사 온 동네 놀이터, 또래 아이들 서넛이 미끄럼틀 앞에 모여 있는데 우리 아이는 그 무리 근처에도 안 가고 벤치 옆에서 혼자 모래만 만지고 있었다. 처음엔 "가서 같이 놀아볼래?"라고 몇 번 권해봤는데, 그때마다 고개를 젓고 내 다리 뒤로 숨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싶다가도, 예전 살던 동네 놀이터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던 게 떠올라서 그냥 낯가림이 원래 있는 편인가 보다 싶었다.
조급해지려던 순간, 떠오른 한마디
솔직히 조금 답답했다. 다른 집 애들은 처음 보는 친구한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던데, 우리 아이는 왜 저럴까 싶은 마음이 잠깐 스쳤다. 놀이터에 나올 때마다 매번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니, 이러다 계속 혼자만 노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예전에 어린이집 선생님이 상담 때 해준 말이 떠올랐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일수록, 억지로 무리에 넣기보다 그 무리를 '구경'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게 먼저예요."
재촉 대신 옆에 같이 앉기
그 말을 떠올리고는 더 이상 놀아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벤치에 같이 앉아서 아이가 하는 모래 놀이에 맞장구를 쳐줬다. "이거 뭐 만드는 거야?"라고 물으며 자연스럽게 그 무리 쪽을 같이 흘끗거리기만 했다.
십 분쯤 지났을까, 아이가 먼저 "쟤네 뭐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가서 물어볼까?"라고 했더니 이번엔 거부하지 않았다. 다만 혼자 가진 않고 내 손을 꼭 잡은 채로 몇 걸음 다가갔다. 그러고도 한참을 멀찍이서 지켜만 보다가, 아이들 중 하나가 "너도 할래?"라고 먼저 말을 걸어준 뒤에야 조심스럽게 무리에 끼었다. 막상 끼고 나니 처음의 그 굳은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십 분도 안 돼서 제일 크게 웃는 쪽이 우리 아이였다.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내가 조급했던 지점은 명확했다. "빨리 어울렸으면" 하는 건 순전히 내 바람이었지, 아이한테는 낯선 무리를 관찰하고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계속 등을 떠밀었다면 오히려 놀이터 자체를 꺼리게 됐을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예전에는 비슷한 상황에서 "인사해야지", "같이 놀자고 해봐"처럼 구체적인 행동을 대신 지시하곤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아이는 오히려 더 굳은 표정으로 내 뒤에 숨었다. 지시가 늘어날수록 아이 입장에서는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었을 거다. 지금 생각하면 그 순간 필요했던 건 지시가 아니라, 그냥 옆에서 같이 지켜봐 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요즘은 이렇게 하고 있다
요즘도 새로운 곳에 가면 처음 몇 분은 꼭 내 옆에 붙어서 상황부터 살핀다. 예전 같으면 그 모습에 조바심이 났을 텐데, 지금은 그냥 그 시간을 기다려준다. 대신 그 몇 분 동안 아이가 보고 있는 걸 같이 봐주고, 궁금해하는 걸 같이 궁금해해 주는 정도만 한다.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아이 쪽에서 먼저 움직인다. 결국 아이마다 마음의 문이 열리는 속도가 다르다는 걸,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야 제대로 배운 셈이다.
아이랑 지내다 보면 '기다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매일 갱신하고 있다.
어떤 일이던 처음에 망설이더라도 시간을 갖고 기다리면 결국 해본다. 그리고 나와 다르게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왠만하면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스스로 결정하고 마음먹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